메이지 유신의 배경
메이지 유신을 알아보기 위해선 일본 막부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1592년에 시작된 임진왜란이 끝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죽게 된다. 그렇게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세키가하라 전투 등으로 전국 시대를 끝내도 에도 막부를 세운다. 이 막부 체계에 대해 먼저 알아보겠다. 이 막부는 도쿠가와 가문 근처 에도에 세워진다. 이 에도에서 막부가 다이묘들을 지배하는데 이 숫자는 300명 정도 된다고 전해진다. 이 300명의 다이묘들은 자신들의 밑에 하급 사무라이들을 또 거느리면서 번이라고 하는 영지를 통치한다. 이걸 봉건제도라고 한다. 다이묘 밑 하급 사무라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수공업이나 농사 등을 담당한다. 이 시대 동안 일본은 인구와 농업 생산량 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일본만의 문화도 더 많이 생겨난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19세기인 1800년대 일본의 하급 계급인 사무라이들의 막부의 대한 신뢰는 점차 떨어져 갔다. 막부는 지금으로 따지면 정부였기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나 경제적인 문제들에 대한 고충을 해결시켜 줘야 했는데 이런 일을 잘 수행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일본은 조선과 마찬가지로 지속되는 평화에 쇠약해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에 큰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페리 제독의 교역
1853년이였던 어느 날 미국 페리 제독이 서양의 무시무시한 증기선들을 끌고 왔고 일본에게 교역을 요구하였다. 일본인들도 아무것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이미 서양 열강들은 너도나도 식민지를 늘려가는 것에 동참하고 있었고 이 늘려가는 위치가 동아시아까지 뻗어나가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강대국이었던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무참히 패한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청나라처럼 습격당하는 것보단 평화적으로 미국과 외교를 하는 게 맞다고 판단한다. 그렇게 일본과 미국은 미일수호통상조약을 맺게 된다. 천황의 칙허 없이 맺어진 이 조약에 대해 강경파들은 분노하게 된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 다이묘들은 막부를 갈아치우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처음에 다이묘들은 막부를 갈아치우고 서양 열강들도 물리치자는 생각을 했지만 서양의 어마어마한 위력에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걸로 생각을 바꾼다. 막부는 그렇게 하급 사무라이와 번들과 계속해서 대립각을 세운다. 그러다 금문의 변이 일어나고 막부는 금세 그들을 제압한다. 그리고 금문의 변을 기세로 조슈 정벌을 실행한다. 그렇게 막부는 토막파들을 물리치면서 왕권을 강화한다.
메이지 유신
급진파들과 막부를 반대하는 세력들을 제거한 막부는 본격적으로 일본을 근대화 시킨다. 그들은 프랑스의 지원으로 서양의 훈련법과 무기들을 얻는다. 그들은 이것뿐만 아니라 서양의 학문과 기술도 함께 익히기로 한다. 훗날 이 행동들은 일본을 강대국으로 만들게 된다. 과거에는 신분제 등 계급에 얽매이는 일이 많았는데 막부와 번들은 출신 계급을 무시하고 오로지 능력만 보고 뽑는 등 큰 개혁들이 시행된다. 그렇게 1866년 에도 막부의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정권을 잡는다. 이 인물은 평가가 굉장히 좋았으며 유능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조슈번 등 토막파는 힘이 빠졌지만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다. 그들도 서양식 훈련과 무기를 얻은 후 조슈번을 장악한다. 그들은 그걸로 끝나지 않고 영국의 함선을 구입하는 등 막부와 대등하게 싸울 준비를 한다. 막부 군은 이런 토막파에 위기를 느껴 즉시 군사 행동을 나서는데 막부 군은 여기서 참패당한다. 그렇게 조슈번과 사쓰마 번은 더욱 강해졌고 막부는 그들에 의해 1868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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