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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화랑의 개요와 유래, 그리고 조직체계

by 아티브로 2022. 8. 17.

신라-화랑-훈련-모습
신라-화랑

 

신라 화랑의 개요

신라 화랑은 고대 신라부터 이어져온 교육 단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청년이나 청소년으로 이루어져 있고 신라 최초의 특수부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들은 신라 각지에서 사람을 모아 훈련하였으며 단순히 훈련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중에 능력이 우수한 자는 따로 뽑아 천거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천거된 사람은 신라의 관직에 올라가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이 있는데 단순히 군사적으로 화랑을 보기도 하였지만 외면 또한 가꾸는 것도 중요하게 보았다. 하지만 삼국사기를 보자면 화랑 제도를 만들기 전에도 비슷한 제도는 있었다고 나온다. 그것이 바로 사다함 같은 느낌이었다. 진흥왕 시대는 신라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시기 경상북도에만 머물렀던 신라가 고구려나 백제 가야 등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영토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경기도나 겅상남도 그리고 함경남도까지 뻗어나갔기 때문에 유래 없는 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영토가 늘면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영토를 다스릴 수 있는 관료였는데 이게 화랑의 창설 원인이라는 의견도 있다. 

 

신라 화랑의 조직 

화랑의 조직은 여기저기 퍼져있었지만 우두머리는 각 각 한명이였다. 화랑의 신분은 평민보다는 귀족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화랑의 지도자이자 지휘관인 국선이 되려면 보통 관직으로는 안됐다. 이때 당시 국선은 김춘추나 김유신이 거쳐갔기에 감히 넘볼 수 없는 위치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지금 고등학교에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이 두 명이나 배출됐다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 그렇기에 그 당시 국선이 되려면 진골이나 성골이어야 했다. 6두품 이하의 사람들은 국선이 절대 될 수 없었다. 그리고 지휘관을 제외하고 화랑을 관리하는 화주라는 관리직이 있었는데 자료가 생각보다 적어 간략하게만 나온다. 하지만 화랑의 관직 중 국선이 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지 낭도가 되는 것은 쉬웠다. 이 낮은 계급인 낭도는 하급 귀족이나 평민들도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고 화랑과 낭도로 만들어진 단체였던 향도라는 것도 있었다. 여기서 신기한 점이 있는데 화랑의 교육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관직자가 아니라 승려였다. 이 당시 승려는 나름 대우받고 있었는데 승려가 되기 위해선 불경을 읽고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와 도교도 접해있는 지금으로 따지면 교수만큼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 승려들도 넓은 범주로 보자면 화랑은 아니고 그냥 교육 자였던 걸로 추측된다.

 

화랑의 주요 활동

화랑은 낭도들과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며 훈련하였다. 산 중에는 금강산과 지리산등이 있는데 이런 산들을 다니며 심신을 단련하였고 국토애를 기르는데 목적을 두었다. 이러한 훈련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는 근거가 있다. 주로 화랑이 다녀간 흔적들을 찾아보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곳을 다녔기 때문이다. 화랑은 신라 영토뿐만 아니라 그 당시 금강산이나 삼일포 같은 곳에서도 흔적이 발견될 만큼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산에 맹수들이 많았기에 쉽게 움직이는 것이 힘들 수도 있었지만 화랑의 활동은 그만큼 중요했던 것 같다. 이들은 미디어로 보자면 무력을 굉장히 단련했다고 나오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들은 학문적인 수련도 중요시했으며 임신서기석의 내용을 빌리자면 사서삼경이나 유교 경전 등 불교뿐만이 아니라 많은 학문을 공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향가 등을 지으며 문학활동도 이어갔다고 볼 수 있다. 이 향가를 짓기 위해선 한자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했기에 공부가 반드시 필요하기도 할 만큼 신라 화랑은 학문적인 지식도 중요시했다. 오늘은 신라의 화랑에 대해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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