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쇠약
임진왜란의 대해 알아보려면 일단 동아시아의 정세를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 그 당시 이웃나라들은 어떤 정세로 변하고 있었고 조선은 왜 침략당했는지 포괄적으로 다뤄보려 한다. 일단 조선의 상황을 알아보자면 조선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면서 초반엔 굉장한 국방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라는 너무나 평화로웠고 200년간의 평화가 찾아온다. 그렇게 그때 당시 세대들은 전쟁에 대해 전혀 모르고 살았을 확률이 크다. 그리고 명나라를 알아보겠다. 명나라는 조선과 오랫동안 친선 관계를 맺은 나라로 엄청난 강대국이었지만 몽골의 계속되는 침략으로 인해 서서히 쇠퇴하고 있었다. 조선과 명과 달리 일본은 정세가 굉장히 달랐다. 일본은 막 통일이 되었고 일본 통일을 주도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여러 장군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대륙을 정복한다라는 핑계 아닌 핑계로 조선을 침략한다. 여기서 조선은 일본이 침략하는 걸 몰랐을까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조선은 얼추 알고 있었다. 조선은 그 당시 세력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당쟁이 엄청나게 치열했다. 그들은 일본으로 통신사를 파견했는데 서인인 김성일은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왕에게 보고한다. 그리고 동인인 황윤길은 전쟁이 일어날 것이니 속히 준비해야 한다고 보고한다. 임진왜란의 흠이다. 이러한 당쟁 속에서 조선은 빠르게 준비하지 못한 결과도 있다. 이렇게 어영부영 시간은 지나가고 결국 임진왜란은 시작된다.
동래성 침입
1592년 4월 13일 부산 앞바다에 어마어마한 숫자의 군함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숫자는 700척이 넘는다. 200년동안의 평화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역사적인 전쟁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부산진 첨사 정발은 이런 갑작스러운 대군의 침공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배운 대로 백성들을 성 안으로 대피시킨다. 그리곤 600명 정도의 병사들과 함께 작렬히 싸우다 전사한다. 압도적인 군사수에 동래성은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함락당한다. 이러한 상황을 조선 조정에 급히 전달했지만 조선 조정은 그냥 가벼운 왜변으로 보고 크게 대처하지 않았다. 그 당시 조선 명장이라 할 수 있는 이일을 사태 수습을 위해 내려보냈지만 상주 전투에서 이 일이 패배하며 이 일은 도망치게 된다.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돌파당하던 조선엔 마지막 희망이 있었는데 바로 북방에서 최고의 명성을 가지고 있던 신립이라는 명장이다. 그는 8천 정도의 병사로 탄금대에서 왜군을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일본 대군을 막을 수는 없었고 탄금대 전투에서 패한 뒤 자결을 택한다. 임진왜란 중 큰 사건이다.
한양 함락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조선은 계속 되는 전투에서 패하게 된다. 그렇게 왜군은 결국 한성까지 도달하려 한다. 그 와중에 조선 왕인 선조는 한양의 피난을 선택한다. 이것 또한 임진왜란의 역사를 바꾸는 선택이다. 신립이 패하면서 한양을 막는 병사는 거의 없다시피 했고 그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그는 의주로 피난을 가게 되고 한양에 도착한 왜군은 왕이 없어 적잖이 당황한다. 왜냐하면 왜군이 한양을 빨리 도착하게 된 이유가 최단거리로 한양에 올라가 왕을 잡으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착해보니 왕은 이미 피난을 가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한다. 여기서 왜군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는데, 왜군은 한양에 도착하기 위해 최단거리로 길을 올라왔기에 사이에 있던 호남 등 지역들에서 의병이 일어난 것이다. 양 옆에 끼인 왜군은 어마어마한 숫자의 병력에도 조금씩 힘을 잃어간다. 그렇게 조선의 반격이 시작되는데 이건 다음 글에서 임진왜란에 대해 써보도록 하겠다.
댓글